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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지켜주고 싶은 그는 나를 지켜줄 생각이 없었으므로.
    WORDS 2015. 4. 23. 00:00

    어렸을 때 나는 사랑하는 것은 서로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로의 아주 깊은 속에 있는 아주 내밀한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서로에게 옮겨주듯 말해주는 것, 비밀을 나눠 갖는 것이라고.

    다른 사람은 못 알아듣는 이야기를 그는 알아듣는 것이 사랑이라고.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남자인 오빠들 속에서 섞여 성장하면서 나에대해서 말하는 법을 잊어

    버려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쉽게 만날 수가 없었다. 나는 힘겹게 내 마음을 말하면 그는 곧바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 버렸다. 나는 다시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좀더 자라 나를 지켜줄 사람을 갖는 일이 사랑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영원히 나를 지켜줄 사람을 갖는 다는 것은 약한 나의 존재를

    얼마나 안정시켜줄 것인가. 새벽에 혼자 깨어날 때, 길을 걸을때,

    문득 코가 찡할때, 밤바람 처럼 밀려와 나를 지켜주는 얼굴.

    만날 수 없어 비록 그를 향해 혼잣말을 해야한다해도

    초생달 같이 그려지는 얼굴. 그러나 일방적인 이 마음은 상처였다.

    내가 지켜주고 싶은 그는 나를 지켜줄 생각이 없었으므로.

     

    좀더 자라 누구나 다 자신을 지켜줄 사람을 갖고 싶은 꿈을 지닌다는 것을

    알게되자 사랑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거기다 우리가 영원히 가질 수

    있는 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는걸,

    사랑은 영원해도 대상은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아야 했을 때,

    사랑이란 것이 하찮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영원을 향한 시선과 몸짓들이 어느 날 꿈에서 깨어난 듯이 사라져버리다니

    멀어져 버리다니.

     

    점점 나는 사랑으로부터 멀어지는 듯했다. 순수하게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잃은 듯했다. 그가 누구인지 조금 궁금해하다가 지나쳤다.

    그 또한 내가 누구인지 조금 궁금해하다가 지나쳤다. 그 또한 내가 누구인지 조금 궁금해하다가

    지나갔다. 서로 그냥 조금 마음에 떠오르는 대로 불러보다가 지나갔다. 그가, 혹은 내가

    있어야할 자리에 대체물들이 많이 생긴탓이겠지. 생각했다.

     

    사랑은 점점 그리움이 되어갔다. 바로 옆에 있는 것, 손만 뻗으면 닿는 것을 그리워하진 않는다.

    다가갈 수 없는 것, 금지된 것, 이제는 지나가 버린 것,

    돌이킬수 없는 것들을 향해 그리움은 솟아나는 법이다.

     

    사랑을 오래 그리워하다 보니 세상 일의 이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생성과 소멸이 따로따로 가 아님을.

    아름다움과 추함이 같은 자리에 있음을, 해와 달이, 바깥과 안이, 상과 바다가, 행복과 불행이.

     

    그리움과 친해지다보니 이제 그리움이 사랑같다.

     




    신경숙 산문집, '사랑이 와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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