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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산의 바람 - 이제니
    POEM 2018. 8. 21. 00:00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사람이 꿈에 나타나 웃었다 울었다 사라졌다. 바람 사이로 사라지는 사람. 사람 뒤로 사라지는 바람. 비산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한쪽은 울고 한쪽은 웃는다. 울면서 웃는 것. 웃으면서 우는 것. 말하면서 말하지 않는 것. 말하지 않으면서 말하는 것. 여럿이서 하나가 되는 것보다 하나인 채 여럿인 방식을 택한 이후로. 그 골짜기에서 너는 돌이 되었구나. 바람이 되었구나. 내내 고독해졌구나. 아코디언과 폴카. 룰렛과 도미노. 광장으로 모여드는 겁 없는 청춘들처럼. 이름 붙이지 않아도 이미 있었던 사물의 의연함으로. 아름다움 속에서. 아름다움 속에서. 너는 높낮이가 다른 물그릇을 두드린다. 들리지 않는 마음처럼 어떤 목소리가 흘러 나온다. 종이 위에 적힌 어두움이여. 찾아내지 않아도 이미 있었던 쓸쓸함이여. 비산은 바람이 없다고 했다. 나의 바람은 세계의 끝까지 걷고 걷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끝없이. 끝없이. 내 속의 고요가 솟아 나올 때까지. 내가 알지 못했던 네 얼굴을 되찾을 때까지. 뜻 없는 모래 장난처럼 글자가 무너져 내린다. 어디선가 무채색의 노래가 타오른다. 그는 죽었고 썩었다. 꿈에서 돌아와 비산의 바람이라고 썼다. 돌에 새겨 넣듯 비산의 파도라고도 썼다. 피산의 피로라고도 썼다. 내게도 고향이 있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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