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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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사라지지 말아라 - 이병률POEM 2019. 6. 27. 00:03
나 무엇이든 잘 기록할 수 있는 사람 되어 당신 모르는 잠버릇을 기록할 수 있다면 문신을 그리겠다는 당신 살갗을 내 시간으로 쓰다듬을 수만 있다면 당신의 닳은 뼈와 기억이 되어 폭설로 잠들 수 없는 밤에 당신 역사와 내통할 수 있다면 어느 신성한 연기 되어 당신 온몸을 방부할 수 있다면 한 줄 위에 나란히 이불로 널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의 광채를 다 가질 수만 있다면 어느 생에서 한 번 당신에게 부딪혔던 작은 새의 파닥거리는 심장이 되어 당신 손아귀에서 안식할 수 있다면 그래서, 그리하여, 그럼에도 따위의 말들을 앞세운 추신들이 모두 당신에게 귀결될 수 있다면 그러고도 이 편지의 맨 끝에 꾹꾹 눌러 쓰나니 부디 당신은 사라지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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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는 제국 - 이병률POEM 2015. 4. 3. 00:00
이 계절 몇 사람이 온 몸으로 헤어졌다고 하여 무덤을 차려야 하는게 아니듯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찔렀다고 천막을 걷어치우고 끝내자는 것은 아닌데 봄날은 간다 만약 당신이 한 사람인 나를 잊는다 하여 불이 꺼질까 아슬아슬해 할 것도, 피의 사발을 비우고 다 말라갈 일만도 아니다 별이 몇 떨어지고 떨어진 별은 순식간에 삭고 그러는 것과 무관하지 못하고 봄날은 간다 상현은 하현에게 담을 넘자고 약속된 방향으로 가자 한다 말을 빼앗고 소리를 빼앗으며 온몸을 숙여 하필이면 기억으로 봄날은 간다 당신이, 달빛의 여운이 걷히는 사이 흥이 나고 흥이 나 노래를 부르게 되고, 그러다 춤을 추고, 또 결국엔 울게 된다는 술을 마시게 되더라도, 간곡하게 봄날은 간다 이웃집 물 트는 소리가 누가 가는 소리만 같다 종일 그 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