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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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이이체POEM 2018. 8. 17. 00:00
몸에 당신의 일기를 베끼고 바다로 와서 지운다. 내 죽음으로 평생을 슬퍼해야 할 사람이 한 명 필요하다. 당신은 말해진 적 없는 말. 모든 걸 씻고. 이렇게 당신이 바다에서 눈물을 흘린 게, 눈물을. 바다의 푸른 계단이 차례로 무너져 내리고, 절벽에서 하얀 고통들이 비명을 지르며 부서진다. 거품들이 분말처럼 흩어지면 당신이 흘려둔 해식애로 세워지던 안개 도시. 파도는 내 몸에 맞다. 나쁜 말들뿐이다. 나는 아직 당신에게 내 얼굴의 절반을 보여주지 않았는데. 당신은 몇 개의 얼굴을 갖고 있는가. 나는 쓴다. 쓴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쓴다. 쓴다고 생각하기 위해 쓴다. 쓴다. 지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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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애인들을 위한 이별 노래 - 이이체POEM 2015. 2. 27. 00:00
한번의 연애가 끝나자 한편의 시가 완성된다당신을 필사해온 내 이력의 최후모든 외마디는 명멸한다돌아오지 않는 폐곡선.오늘은 누구라도 나를 조심했으면 좋겠다 상처는 녹슨 뼈에 새겨지는 방식으로 남겨진다필름이 끝나는 소리가 난다곁에 있어줘서 고마워요나는 곁에 있는 게 아니야, 그저 남겨지는 거지아무런 감흥도 없이입에서 귀로 흘러들어가는 종언나는 당신을 저주하는 나를 용서하기로 한다 날짐승들은 흙을 더 많이 기억한다부르튼 눈동자로 보는, 푸르지 않은 수평선모두 잊고 태워버린 시집에는완벽하게 윤색된 기억들이 아우성치고 있다거짓말들로 꾸려진 가구들은언어의 공백을 감정하느라사무치도록 흉측했을 것이다오해할 수 있는 만큼 이해하고이해할 수 있는 만큼 오해하는 아무 이유 없이 오랫동안 가만히,서 있고 싶을 때가 있다버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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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 이이체POEM 2014. 10. 9. 00:00
우리는 서로의 몽타주다나는 세계를 지우는 일을 했고너는 세계를 구성하는 구멍에 빠졌던 가난 의붓아들과 의붓딸의 만남우리를 낳지 않은 우리의 부모들을 탈각했다가진 적도 없던 것을 지키려고 애썼고서로 악수하면서 서로의 손을 혼동해서 침묵했다우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게 되었음에도거울로 방을 가득 채웠으며서로의 혈액형도 모른 채 피를 섞었다 나는 녹슨 문 앞에 앉아고드름을 부러뜨리는 부랑아너는 너에게도 어울리지 않아서하염없이 누군가를 치환하지우리가 살찌고 행복해서 질려버릴 때잊을 수 있겠지만 잊지 않겠다는 주(呪)를미신처럼 읊조릴 거야내가 없었던 세상을 가장 근처에서 만지는 일네가 없는 꿈을 꾼 적이 없다 우리는 유기되었다세계와 거의 비슷해지는 중이다없애러 간 곳에서 얻어서 돌아올 것임을 안다갑자기 부끄러워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