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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호수 위에 - 함성호POEM 2014. 9. 9. 00:00
밖에는 눈보라가 몰아쳐
먼 옛날이야기처럼 나무 문짝이 덜컹이고
날리는 눈이 귀신의 차가운 숨소리같이 싸르락이 창을 두드려
나는 아무도 나다니지 않는 길에서
누가 소리 죽여 웃는 소리를 듣고 창 앞에 서 있다
웃음소리는 아직도 귀에 멍멍한데
소나무 판자로 이은 담벼락들 사이로
바람이 쌓인 눈을 돌리고 다닐 뿐
인적이라고는 없고, 굶주린 개 한 마리 어슬렁대지 않는다
휘어진 자작나무처럼
추워서 허리가 부러질 것 같으면서도
나는 창 앞에서 쉽게 떨어질 줄을 모른다
왜냐하면
모든 게 그리운 밤이 올 것이다
기쁨과 슬픔이야
어쩔 수 없었던 것들과, 할 수 없었던 것들
백옥같이 환하게 웃던―, 흐르면서 가만히 있고
가만히 있으면서 흘러가는
하얀 발자국 소리
하얀 발자국 소리
곧 이 얼음호수의 눈보라를 끌며 네가 들어올
저 문이 내 귀가 되어 떨고 있을
우리는 해와 달이 될 오누이처럼 구차하게 하늘에 빌지 말고
맷돌을 굴릴 오누이처럼 차라리 요행을 바라자
어떤 맷돌은 아직도 푸른 바다 밑에서 돌고 있어
넙치며, 오징어며, 명태며, 도다리며, 온갖 것들을 기른다더라, 마는
어쩌다 나는 하얀 산같이
하얗게 핀 들판같이
흰 바위같이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태양의 흑점을 살피다 눈이 하얗게 먼 천문가는
그래서 기하학자가 되었다
불을 모시던 어느 사제는
화재가 나자 신전과 함께 하얀 재가 되었다
사람들은 신성모독에 분노했다
나는 수(數)의 기쁨도,
신성을 더럽히지도 못해서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흐르면서 가만히 있는
누가 이 추위에 부러 문을 닫지 않은 모양이다
열렸다 닫히고 열렸다 닫히는 하얗게 지새는 소리
밤이 아니면 너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꼭 이런 밤에 나는 하얗게 눈멀고
꼭 이런 밤에 나는 하얀 재가 되어
무너져
푸른 호수에 백발을 감고 있는
하얀 혼―, 끝없이 내릴 흰 눈이 내린다
호수 위에 섬 하나로,
섬 하나도
호수 위에 내리는 눈처럼 잠깐 있다,
사라질 것 같은
오늘은 먼 옛날이야기처럼
눈이 내리고
섬 하나도
호수 위에 내리는 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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