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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 우리가 하지 않은 일WORDS 2015. 2. 15. 00:00
1.
그녀와 헤어졌을 때 나는 무척 가슴이 아팠다. 솔직히 말하자. 나는 거의 정신이 없었다. 괜찮다가도 갑자기 땅이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그건 이상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대체로 나는 이별에 강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중략) 사귀기 시작할 때부터 이미 이별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결국에는 헤어지게 되어 있다.
2.
내가 두려웠던 건 끝을 보는 거였다. 그녀가 직접 그 이유를 설명하는 거였다. 내게는 그냥 사랑이 끝났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적당했다. 그냥 내가 싫어졌을 뿐이다. 거기에 다른 이유는 없어야 했다. 사랑이 시작되는 데 이유가 없는 것처럼, 끝나는 데도 이유가 없다. 그건 나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곳에서 결정되는 일이어야 했다.
3.
(중략) 뭔가를 두려워하면서 정작 그게 무엇인지 모를 말들을 했다. 어렵고 어리석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결과적으로 괜찮았다.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마 우리가 헤어진다면 우리가 서로에게 한 일 때문이 아니라 하지 않은 일 때문일 거라고.
4.
그녀는 낮에 때때로 내게 전화해서 뭐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것도 안해. 그냥 집에 있지,라고 대답했다. 그런 전화를 끊고 나면, 마치 나 자신의 일부가 조금씩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창작과 비평 14년 여름호 / 김종옥 작가의 <과천, 우리가 하지 않은 일>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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