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늘한 창가에 이마를 맞대고서 나는 빨리 고등학생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빨리 중년이 되고 노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니 빨리 핼리가 와주기를 바랐다. 다행할수록, 삶은 얼마나 가혹한 것인가, 그래서 짧게, 나는 가혹해지고 싶었다. 많은 별들을 보고 또 봐왔겠지. 수세기나 우주를 떠돈 핼리라면, 과연 지구를 객관적인 잣대로 심사할 수도 있는 거겠지. 이제 더이상 자라지 않는 손톱을 가만히, 나는 물어뜯었다. 가만히.
핸드폰이 울렸다. 모아이였다. 폴더를 열자 모아이의 메시지가 은회색의 화면 속에 유빙(流氷)처럼 떠 있었다. -못, 지금 찾아보니까 펭귄은 남극에서만 산대- 문득 모아이가, 그래서 북극의 인간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p.95)
2.
너희는 뭐지? 뭐냐구? 저희는
세계가 <깜박>한 인간들이에요.
제 생각으론… 그렇습니다. (p.227)
3.
이불 밖으로 빠져나온 발가락들을 향해. 나는 몇번이고 써브를 넣는 상상에 빠져 있었다. 썬샤인 썬샤인, 음악을 듣는 것도 일년 만의 일이었다. 그러니까
이것이 나의 의견이다.
의견을, 가져도 되겠습니까? 라켓을 돌려보며 나는 중얼거렸다. (p.47)
박민규 작가의 <핑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