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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왕기 - 곁POEM 2015. 4. 9. 00:00
곁을 준다 줄 것이 없어서 오늘은 곁을 주고 그저 머문다구름 곁에서 자보고 싶은 날들도 있지만내일은 그냥 걷다 옆을 주는 꽃에게 바람이 마음 준 적 있는지 묻겠다곁이 겨드랑이 어느 쪽인지, 옆구리 어떤 쪽인지자꾸 사람에게 가 온기를 찾아보는 쓸쓸이 있어나는 간혹 몸 한켠을 더듬어 볼 텐데야윈 몸에 곁이 돋으면 너에게 가겠다고 편지하겠다곁이라는 게 나물처럼 자라는 것인지그리하여 내가 내 곁을 쓸어 보는 날엔나무가 잎사귀로 돋는 곁이 있고 별이 빛으로 오는 곁도 있다고 믿어보겠다가령 어느 언덕배기 세상에 단 둘이 곁으로 사는 집, 비추는 달빛도 있다고 생각하겠다고작해야 이 삶이 누군가의 곁을 배회하다 가는 것일지라도곁을 준다 줄 것이 없어서 곁을 주고 세상의 모든 곁이 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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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성한계점 - 오은POEM 2015. 4. 7. 00:00
나는 팽팽합니다. 더 이상 늘어나고 싶지 않습니다. 말을 짧게 끊는 법을 잊어버렸어요. 마침표가 보이지 않습니다. 간혹 갈고리 같은 쉼표가 내 몸을 절단하는 생각에 바르르 떨곤 합니다. 나는 요렇게나 시시합니다. 당신의 두 손에 온몸을 맡기겠습니다. 절대 놓지 마세요. 밀고 당기는 데 필요한 탄성계수는 내가 구하겠습니다. 나를 놓으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는 사실만 명심하세요. 당신의 뺨을 후려칠 수도 있습니다. 그게 한번 늘어난 자의 운명입니다. 당신이 처음 내 몸을 늘여 빼던 순간을 기억합니다. 내 말이 길어지기 시작했지요. '사랑해'라는 말을 '너를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말이 길어진 만큼 빼빼해져야만 했습니다. 이제야 나는 인어공주의 심정을 이해합니다. 늘어난다는 것은 사랑에 자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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夢 - 이기성POEM 2015. 4. 5. 00:00
우린 막 토성의 붉은 지평선에 도착했답니다. 멀고먼 지구의 불빛이 우르르 쏟아졌지만, 아무도 눈뜨지 않았어요. 너무 큰 구두를 신고 두꺼운 베개 속에 얼굴 푹 파묻었는데요. 휘파람처럼 눈꺼풀 속으로 스며드는 저 연기는 무얼까요.주르르 미끄러지는 사람들이 보여요. 귀를 막고 손 흔들고 싶지만, 발이 푹푹 빠지는 우린 파열된 엔진, 검은 유전이 아니죠. 노랗고 푸른 화염의 혀는 어디로 갔나요. 지금 눈을 뜰까요, 아님 좀더 눈 감고 모래의 공장을 산책할까요.커다란 구두를 신고 걷는 길은 하염없이 길고 뾰족한 발자국들은 금세 지워지요. 밤의 폭풍에 박힌 기억의 손톱은 아직 아름답지만, 내 얼굴은 곧 흩어질 거예요. 지구의 창백한 이마 위로 흘러내리겠어요. 붉은 모래의 영혼을 한 줌 보냅니다. 혓바닥으로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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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는 제국 - 이병률POEM 2015. 4. 3. 00:00
이 계절 몇 사람이 온 몸으로 헤어졌다고 하여 무덤을 차려야 하는게 아니듯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찔렀다고 천막을 걷어치우고 끝내자는 것은 아닌데 봄날은 간다 만약 당신이 한 사람인 나를 잊는다 하여 불이 꺼질까 아슬아슬해 할 것도, 피의 사발을 비우고 다 말라갈 일만도 아니다 별이 몇 떨어지고 떨어진 별은 순식간에 삭고 그러는 것과 무관하지 못하고 봄날은 간다 상현은 하현에게 담을 넘자고 약속된 방향으로 가자 한다 말을 빼앗고 소리를 빼앗으며 온몸을 숙여 하필이면 기억으로 봄날은 간다 당신이, 달빛의 여운이 걷히는 사이 흥이 나고 흥이 나 노래를 부르게 되고, 그러다 춤을 추고, 또 결국엔 울게 된다는 술을 마시게 되더라도, 간곡하게 봄날은 간다 이웃집 물 트는 소리가 누가 가는 소리만 같다 종일 그 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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