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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인의 창 - 김행숙
    POEM 2014. 8. 29. 00:00

    유리로 만든 것들은 우리를 속이기 쉽습니다. 저 창문은 액자 같고, 그곳에서 가장 먼 나뭇가지에라도

    나는 걸려 있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신이 찾을 수 있는 곳이 내가 있어야 할 그곳입니다. 당신의 눈빛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곳에,

    내 슬픔의 무게는 나뭇가지를 부러뜨리고 구덩이를 팝니다. 많은 것들이 꺼질 듯 매몰되었습니다. 아아, 나는 멸망인 척해도 멸망이 아닙니다. 나는 그림인 척해도 그림이 아닙니다.

    창밖이 진짜 어떤 세상인지 압니까?

    구덩이에 빠져서 낮과 밤과 다음날 아침이 비슷하면 어떤 기분인 줄 아세요? 기분이 구덩이 같고 흘러내리는 흙 같아요.

    모든 옆집의 창문 같은 그곳,

    유리의 주인인 당신의 눈빛을 상상하면 나는 그림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 삶의 카펫에 누군가 주제를 정하고 문양을 찍는 것 같습니다. 카펫은 밟으라고 있는 겁니다.

    이런 내 마음의 소리가 당신에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내 절망이 당신에게 스러질 듯이 원경으로 보이는 것 같습니다.

    당신의 찌푸린 눈빛처럼 내가 나를 보는 것 같습니다.

    당신의 눈빛에 항상 걸려 있는 나의 살가죽을 쓰고 다니면 세상의 모든 옆집들

    창문이 빛을 반사하고, 창문이 눈물을 흘리고, 창문이 눈동자를 키우고, 창문이 문서를 작성하고, 창문이 강간을 증언하고, 창문이 창문의 창문을 낳고,

    창문이 자꾸 질문을 만들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대답은 안 만들어줘요. 그곳에 당신이 있었다면

    내가 있었을까? 없었을까?

    어느 이웃집 꼬마처럼 돌맹이를 손에 쥐면 그때 그곳이 생각납니다. 그곳에 돌멩이를 던진다면, 그것은

    당신의 눈알을 당신의 얼굴에서 빼앗아 그 얼굴로부터 멀리 던져버리고 싶었다는 뜻입니다. 당신의 눈알을 으깨는 기분으로 나는 돌멩이를 손에 꼭 쥐고 있습니다. 내가 보이는 그곳,

    그곳에 당신이 있을까?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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