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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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이이체POEM 2018. 8. 17. 00:00
몸에 당신의 일기를 베끼고 바다로 와서 지운다. 내 죽음으로 평생을 슬퍼해야 할 사람이 한 명 필요하다. 당신은 말해진 적 없는 말. 모든 걸 씻고. 이렇게 당신이 바다에서 눈물을 흘린 게, 눈물을. 바다의 푸른 계단이 차례로 무너져 내리고, 절벽에서 하얀 고통들이 비명을 지르며 부서진다. 거품들이 분말처럼 흩어지면 당신이 흘려둔 해식애로 세워지던 안개 도시. 파도는 내 몸에 맞다. 나쁜 말들뿐이다. 나는 아직 당신에게 내 얼굴의 절반을 보여주지 않았는데. 당신은 몇 개의 얼굴을 갖고 있는가. 나는 쓴다. 쓴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쓴다. 쓴다고 생각하기 위해 쓴다. 쓴다. 지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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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잡아, 나를 놔 - 신현림POEM 2018. 8. 10. 00:00
사는 게 별거겠니추억하며 잊어 가는 일죽고 싶다가 살고 싶은 일감정의 시소 타며 하늘 보는 일사는데 가장 큰 고통은 욕망이야 나를 안아 줘안전벨트처럼 안아 줘불안한 술잔처럼 기울지 않게돈 걱정과 죽음에 짓눌리지 않게나를 잡아, 나를 놔 자, 우린 일하고 깨치며 가야지네 입과 내 입에 사랑의 떡을 처넣고입 깊숙이 슬픔 들끓게 내버려 두고쌀과 물을 사람들과 나누고오늘은 다르게 살기 위한 시도잖니 이 도시만큼 괜찮은 무덤도 없을 거야너만큼 편안한 수갑도 없을거야네 안에 있으니 따뜻해졌어날 조이지마 나한테 매달리지 마그렇다고 날 떠나면 되겠니나를 잡아, 나를 놔나를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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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는 역설 - 이장욱POEM 2018. 7. 6. 01:42
당신을 잊자마자 당신을 이해했어.닫혀 있기 때문에 들어가고 싶은 문 앞에서.뜨거워져서 점점 더 뜨거워져서드디어 얼어붙을 것 같았는데. 이봐,노력하면 조금씩 불가능해진다.바쁘고 외로운 식탁에서 우리는만났으므로 헤어진 연인들처럼.당신을 알지 못해서 당신에 대해그토록 많은 말을 했구나.어려운 책을 읽기 때문에 점점단순한 식물이 되어서.해맑아서잔인한 아이처럼.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으니까새벽마다 또 눈을 뜨네.내가 조용한 가구를 닮아갈 때그건 방 안이 아니라 모든 곳,거기서당신이 나타났다.밤이라서 너무 환한 거리에서.바로 그 눈 코 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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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을 주세요 - 박연준POEM 2017. 12. 30. 20:39
어제 나는 남자와 자고 나서 홀로 걷는 새벽길 여린 풀잎들, 기울어지는 고개를 마주하고도 울지 않아요 공원 바닥에 커피우유, 그 모래 빛 눈물을 흩뿌리며 이게 나였으면, 이게 나였으면! 하고 장난질도 안쳐요 더 이상 날아가는 초승달 잡으려고 손을 내뻗지도 걸어가는 꿈을 쫓아 신발 끈을 묶지도 오렌지주스가 시큼하다고 비명을 지르지도 않아요, 나는 무럭무럭 늙느라 케이크 위에 내 건조한 몸을 찔러 넣고 싶어요 조명을 끄고 누군가 내 머리칼에 불을 붙이면 경건하게 타들어 갈지도 늙은 봄을 위해 박수를 치는 관객들이 보일지도 몰라요, 모르겠어요 추억은 칼과 같아 반짝 하며 나를 찌르겠죠 그러면 나는 흐르는 내 생리 혈을 손에 묻혀 속살 구석구석에 붉은 도장을 찍으며 혼자 놀래요 앞으로 얼마나 많은 새벽길들이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