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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호수 위에 - 함성호POEM 2014. 9. 9. 00:00
밖에는 눈보라가 몰아쳐 먼 옛날이야기처럼 나무 문짝이 덜컹이고 날리는 눈이 귀신의 차가운 숨소리같이 싸르락이 창을 두드려 나는 아무도 나다니지 않는 길에서 누가 소리 죽여 웃는 소리를 듣고 창 앞에 서 있다 웃음소리는 아직도 귀에 멍멍한데 소나무 판자로 이은 담벼락들 사이로 바람이 쌓인 눈을 돌리고 다닐 뿐 인적이라고는 없고, 굶주린 개 한 마리 어슬렁대지 않는다 휘어진 자작나무처럼 추워서 허리가 부러질 것 같으면서도 나는 창 앞에서 쉽게 떨어질 줄을 모른다 왜냐하면 모든 게 그리운 밤이 올 것이다 기쁨과 슬픔이야 어쩔 수 없었던 것들과, 할 수 없었던 것들 백옥같이 환하게 웃던―, 흐르면서 가만히 있고 가만히 있으면서 흘러가는 하얀 발자국 소리 하얀 발자국 소리 곧 이 얼음호수의 눈보라를 끌며 네가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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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 - 이상POEM 2014. 9. 7. 00:00
역사를하노라고 땅을파다가 커다란돌을하나 끄집어 내어놓고보니 도무지어디서인가 본듯한생각이들게 모양이생겼는데 목도들이 그것을메고나가더니 어디다갖다버리고 온모양이길래 쫓아나가보니 위험하기짝이없는큰길가더라.그날밤 한소나기하였으니 필시그돌이깨끗이씻겼을터인데 그이튿날가보니까 변괴로다 간데온데없더라. 어떤돌이와서 그돌을업어갔을까 나는참이런처량한생각에서 아래와같은작문을지었도다. '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수없소이다. 내차례에 못올사랑인줄은 알면서도 나혼자는 꾸준히생각하리다. 자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어떤돌이 내얼굴을 물끄러미 치어다보는것만같아서 이런시는 그만찢어버리고싶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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삵 - 박서영POEM 2014. 9. 5. 00:00
밤이면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지오랫동안 서로의 목덜미를 물어뜯으며부드러운 털 사이로 피가 나지 않을 만큼 누군가 슬픔은 뭔가를 찌르고쪼아대는 일 따위를 모른다고 말하네울고 싶을 때갑자기 가로등이 꺼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좋아하는 사람을 끌어안으며 서로 번진다는 건 어떤 걸까바람이 불면 목덜미에 키스하고 싶은 우리는 아무도 서로에게 망명한 적 없어눈빛이 눈빛을 올라타고왼손이 오른손을 올라탄 순간이 있더라도털 사이로 피가 나지 않을 만큼서로를 조금 할퀴다가 헤어졌을 뿐 내가 누군가를 물어뜯지 않는 건밤이 뭔가를 기록하고 불을 지르고 가버렸기 때문,하늘에서 천둥번개가 치면삵의 울음소리가 복원된 거라고 생각해도 좋아 밤이면 다정한 사람들이 모이지만질 수 없는데, 먼 울음 들리곤 하지보이지 않는데, 먼 발소리 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