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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오는 사람 - 최명길POEM 2015. 7. 3. 00:00
그 사람 빛으로 오네. 눈부시게는 아니고 저녁놀처럼 그윽히 어스름 조금 못 다가간 그런 빛으로 오네. 침묵으로 타버린 몸 잠시 얼굴 드러내다 돌아서는 안타까운 빛으로 비치네. 샘물에 그늘로 어려있듯 가늘히 어느 누구의 한 생이 고스란히 담겨서 다만 조금만 보여주는 그런 빛으로 그 사람 빛으로 풀리네. 개울물살 물아지랑이를 밟으며 잠시 날개를 내려놓다 미끄러져 떠오르는 갯버들 실잠자리 그 위를 넘쳐 날듯 닿아서 닿아서 고이는 그런 눈물겨운 몸으로 그런 아롱거림으로 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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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적인 매혹을 사랑이라는 단어로 설명하려고는 하지 않았다.WORDS 2015. 5. 29. 00:00
하지만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사랑과 성욕이 어떤 식으로 관련이 있는지 그 점을 아무래도 알 수가 없었다. 물론 그즈음의 나는 오미가 내게 부여한 악마적인 매혹을 사랑이라는 단어로 설명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버스에서 만나는 소녀에 대한 희미한 감정을 '이게 사랑이라는 걸까' 하고 생각하는 내가, 그와 동시에 머리칼에 번쩍번쩍 광을 낸 젊고 촌스러운 버스 기사에게도 끌렸던 것이다. 무지는 내게 모순의 해명을 요구하지 않았다. 버스 기사의 젊은 옆얼굴을 바라보는 내 시선에는 무언가 피하기 힘든, 숨 쉬기조차 어려운 괴로운 압력과도 같은 것이 있었고, 빈혈질 여학생을 흘끔거리는 시선에는 일부러 그러는 듯한 인공적인, 지치기 쉬운 면이 있었다. 미시마 유키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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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적인 삶 - 김안POEM 2015. 5. 27. 00:00
당신은 나를 향해 몸을 벌려요 나는 그것이 사랑이 아닌 것을 알고 있지만 어느새 내 얼굴은 녹색이 되어요 당신이 몸을 벌리면 파르르 서리 낀 창이 흔들려요 방 전체가 하얀 서리들로 가득 차요 밤이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고, 당신의 벌어진 몸에선 노래가 흘러나와요 나는 이 노래를 알고 있지만 아무리 불러도 첫 소절로만 돌아갈 뿐이에요 나는 이 노래의 끄트머리에 뱀과 쥐들, 개와 파리들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나는 당신의 노래를 움키고 당신의 푸른 질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요 온갖 은유를 만져요 제발 나를 안아주세요 베어 먹지 않을게요 제발 나를 안아주세요 베어 먹지 않을게요 당신은 사려 깊은 장님이 되어 내 손을 빼내어 당신의 입안으로 넣어요 아직 나의 고백은 끝나지 않았는데 당신의 입안에서 내 손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