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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 일이 지나고 오늘 - 이성미POEM 2020. 4. 28. 00:00
한 사람이 가자 이어달리기하듯 다른 사람이 왔다. 그는 가면서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넘겨주었다. 나는 파란 바통이 되어 …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칠 일이 지나고… 오늘은 일곱 개의 태양이 뜬 날. 오늘은 일곱 나라의 언어로 종알거린다. 나는 오늘의 입을 보고 있다. 오늘은 주름치마를 입고 사장 좌판을 펼치듯 하루를 펼친다. 오늘은 뜨거운 시간, 서늘한 시간, 밝은 시간… 각자 다른 길이와 온도를 가진다. 나는 시계 소리를 듣고 있다. 밤이 가까워질수록 오늘은 점점 느리게 간다. 오늘은 뒤섞이고, 오늘은 돌기가 있고, 마주 보다가 몸이 멍청해진다. 오늘 새벽의 공기는 하얀 스카프처럼 휘감으며 속삭였지. 나를 사랑해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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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급생WORDS 2020. 4. 21. 11:35
1. 내 가장 큰 행복과 가장 큰 절망의 원천이 될 그 소년에게 처음 눈길이 멈췄던 것이 어느 날 어느 때였는지를 나는 지금도 기억할 수 있다. 그것은 내 열여섯 번째 생일이 지나고 니서 이틀 뒤, 하늘이 잿빛으로 흐리고 어두컴컴했던 독일의 겨울날 오후 3시였다. 2. 독일은 너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고 나는 총통이 유대적인 요소들 중에서 좋은 것과 바람직하지 못한 것을 완벽하게 가려낼 능력과 의지를 지녔다고 믿어. (중략) 네 부모님이 여기에 남아 계시기로 했다는 것이 기뻐. 당연히 아무도 그분들을 괴롭히지 못할 것이고 여기에서 평화롭고 안전하게 사실 수 있을 거야. 아마도 어느 날엔가는 우리의 길이 다시 서로 만나겠지. , 프레드 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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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시간 - 심보선POEM 2020. 3. 31. 00:00
책을 읽을 시간이야 너는 말했다 그리고 입을 다물었다 네가 조용히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생각한다 이상해 정말 이상해 나는 이혼은 했는데 결혼한 기억이 없어 이혼보다 결혼이 훨씬 더 좋았을 텐데 그 책에는 이별 이야기가 있을까 어쩌면 네가 지금 막 귀퉁이를 접고 있는 페이지에 나는 생각한다 온갖 종류의 이별에 대해 모든 이별은 결국 같은 종류의 죽음이라는 사실에 대해 우리는 키스할 때 서로의 혀를 접으려고 애쓴다 무언가 그 무언가를 표시하기 위해 영원히 키스하고 싶다 이별하고 싶은 것과 무관하게 나는 천성 바깥에서 너와 함께 일생을 헤맬 것이다 돌아가고 싶다 떠나가고 싶은 것과 무관하게 어디론가 그 어디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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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의 영혼 2 - 이현승POEM 2020. 3. 30. 01:02
나는 당신의 꿈을 엿보는 자 당신의 잠꼬대를 기록하는 자 당신은 허공 가득 두 손을 움켜쥐고 비명을 지르며 깨어난다 당신의 잠은 봉인이 아니라 누수의 방식으로 완성된다 구멍을 막기에 당신은 너무 작은 손을 가진 사람 바늘을 집어올려야 하지만 당신은 너무 큰 손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므로 너무 커서 목구멍을 빠져나오지 못하는 덩어리진 소리들 당신의 꿈을 받아 적는 일은 언제나 불완전하기만 하다 설탕유리 같은 꿈이 당신을 피 흘리게 하지는 않지만 당신은 계속 솟구치는 피를 막거나 훔쳐댄다 나는 가벼운 읽을거리나 마실 물을 준비한다 당신은 단것을 조금 먹은 사람처럼 가벼워질 수 있다 눈을 감고 숨을 죽인 채 당신은 어디로든 떠날 수 있지만 당신은 결국 당신에게로 돌아온다